은모래 05 2016. 10. 6. 23:47
 


 
 
어떤 날 / 도종환


어떤 날은 아무 걱정도 없이
풍경 소리를 듣고 있었으면
바람이 그칠 때까지
듣고 있었으면

어떤 날은 집착을 버리듯 근심도 버리고
홀로 있었으면
바람이 나뭇잎을 다 만나고 올 때까지
홀로 있었으면

바람이 소쩍새 소리를
천천히 가지고 되오는 동안 밤도 오고
별 하나 손에 닿는 대로 따다가
옷섶으로 닦고 또 닦고 있었으면

어떤 날은 나뭇잎처럼 즈믄 번되의
나무에서 떠나
억겁의 강물 위를
소리없이 누워 흘러갔으면
무념부상 흘러갔으면